Корейский Политика
27.08.2026 Читать источник
В Южнокорейском провинции Ённён родной дом героя 5-го мая превратят в мемориальный музей

Уезд Ённён начал реконструкцию дома Пак Гванхёна, чтобы превратить его в памятник жертвам восстания 1980 года. На завершение работ, включающих строительство образовательного центра и расширение мемориала, потребуется 100 миллионов во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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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에 있는 박관현 열사 생가가 열사의 희생과 오월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재탄생한다. 영광군이 박 열사 생가 정비사업을 시작한 덕분이다. 생가 정비사업 착공은 박 열사 가족이 영광군에 건물과 땅을 기부채납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영광군은 그동안 박 열사 생가 정비를 위한 타당성과 기본계획 수립용역, 생가 정비사업 실시설계 용역을 거쳐 지난 6월 공사에 들어갔다. 생가 정비와 추모 시설 확장에는 총사업비 10억 원(도비와 군비 각 50%)이 들어간다. 불갑면 쌍운리 생가 정비에 7억 7000만 원, 불갑면 방마리 추모시설 확장 이전에 2억 3000만 원이다. 추모 시설 정비는 지난해 11월 끝냈다.
생가 정비는 창고와 축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78제곱미터 규모의 교육관을 건립한다. 기존 주택도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기념관으로 만든다. 한식 담장과 함께 화장실, 주차장 등 방문객 편의 시설도 설치한다. 방마리에 있던 추모비 이전, 조경과 주변 정비 등도 이뤄진다. 영광군은 올 연말까지 정비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박관현(1953∼1982) 열사는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서 났다. 생가와 어깨를 맞대고 있는 불갑초등학교를 거쳐 광주동중·광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1978년 법조인의 꿈을 안고 전남대학교 법대에 들어갔다.
대학 3학년에 다니던 박관현 열사는 1980년 4월 '민주학원의 새벽기관차'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5월엔 전남도청 앞 민족민주화성회를 이끌었다. 5월 16일 민족민주화성회에서 한 그의 연설이 녹음파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 성회를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자는 것이오,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이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우리 광주시민 아니, 전라남도 도민 아니, 우리나라 대한민국 모든 민족이 온누리에 횃불을 밝히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 인사를 잡아들였다. 박관현은 예비검속을 피해 광주를 빠져나갔다. 그가 없는 광주에서는 열흘 동안 '피의 항쟁'이 펼쳐졌다. 5.18민주화운동이다.
박관현 열사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것은 죽음보다도 더 버거웠다. 1982년 4월 서울에서 붙잡힌 박관현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내란 중요임무 종사라는 죄목으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박관현은 감옥에서도 의연하게 맞섰다. 5.18 진상 규명, 재소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40여 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다. 몸이 쇠약해진 박관현은 1982년 10월 12일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났다.
박 열사는 지금 오월영령들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다. 열사의 모교인 전남대학교엔 '박관현 언덕'이 조성돼 있다. 생가에서 가까운 영광군 불갑면 방마리에는 박관현 동상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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